漢字文化圈이 成立된지 三四千年동안에 우리 民族의 文化生活은 모든 것을 漢文으로 營爲해 왔다. 東아시아 周邊國들 가운데서는 물론이고 中國本地에 比해서도 漢字의 攝取 消化가 그 深度와 廣範함에 있어서 별로 遜色이 없었다.
이리하여 漢字漢文은 우리의 宗敎 禮俗 敎育 내지 國民의 日常的 慣行속에서 浸潤되고 나아가 典章制度로서 우리나라 統治構造 그대로 導入되어 體制로서 굳어지기도 하였다.
여기 가장 重視한 것은 人名과 地名이 모두 漢字로 되었다는 것이다 人名과 地名은 우리의 原始 古代社會에 있어서 물론 우리말 = 토박이말 (土俗語) 로 되어 있었을 것인데 이것까지 모두 漢字로 改作된 것이다. 우선 人名을 보기로 하자. 三國 時代까지는 그래도 토박이 이름을 漢字로 着用 表記한 것이 많았는데 高麗 以後에는 점차 토박이말로 된 이름이 없어지고 音義가 모두 韓化되어, 李朝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人名의 이러한 變化에 비하여 地名은 相對的으로 그 變化가 적은편이다. 그것은 두가지 理由에서다. 첫째 사람은 살다가 죽고 또 나고 하는 것이어서 漢字文化의 進展에 따라 人名도 더욱 變化되어 왔지만 地名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地名도 王朝의 交替, 法令의 改定 내지 行政區域의 變更 등에 따라 얼마든지 變化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과 같이 죽고 나고 하는 것이 아니므로 地名은 人名처럼 쉽게 變化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人名은 自己의 品位를 높이기 爲해 漢化 卽 美化로 생각하고 토박이 이름을 拒否해 왔지만 地名에 對해서는 그러한 努力이 덜 기울여졌기 때문이다. 물론 地名도 州‥付‥郡‥縣‥등 고을의 名稱을 모두 漢化시켜 놓았지만 그 아래에 있는 村落(自然部落)‥溪川‥丘陵‥陰谷 등에 이르러서는 토박이 이름이 그대로 살아있다. 우리말 그대로 불러지고 있는 것이 많을 뿐 아니라 漢字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라도 잘 해쳐보면 그 속에 토박이말이 고이 들어 있는 것이다.
해방 후 우리 民族의 傳統과 由著를 回復하기 爲해 우리말 우리 情調를 찾아내는 作業을 여러 면으로 展開해 왔다. 우리 方言을 調査하고 우리 民謠傳說을 授集하는 등 많은 成果를 내고 있다. 특히 最近, 地名에 관한 硏究活動이 結實을 얻어, 韓國地名總覽 “韓國 땅이른 큰사전” (한글학회 編著) 의 大著가 연이어 나오게 되었다. 歷史的인 業績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全國土를 對象으로 고을마다 마을마다 다루어 놓은 것이어서 아무래도 誤謬가 있을 수 없고 또 疎漏 한 곳도 적지 않다. 識者들은 이런 缺陷을 메우기 위해 반드시 市郡單位의 자세한 地名의 杷握이 先行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에 密陽文化院에서 密陽地名攷를 編著하여刊行하게 되었다. 1市 ‥ 2邑‥9個面의 289行政里洞 구석구석에 온갖 이름들을 찾아 땀‥각단‥개울‥언덕‥골짜기‥들녘 할 것 없이 무릇 이름이 있는 것은 거의 다 수록하고 가급적 그 原義를 설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地名에 結付된 傳說까지 첨부하여 理解를 돕게 하였다. 爲에서 말한 識者들의 意見이 우리 密陽에서 먼저 試圖되었고 일단 실현을 본 셈이다.
우리는 民族主體性을 강조하면서 종래 漢字文化圈에 있어서의 沒自覺性에 깊이 反省하고 우리말 우리 情調를 되찾기에 힘을 傾注해 왔다. 그러나 요즘 漢字文化 대신 西洋風潮에 휩쓸려 沒自覺性의 憂慮는 더욱 커지고있다. 國際化명, 世界化라는 l美名 아래 自我를 송두리째 喪朱해 버릴 危險까지 느껴진다. 우리는 過去歷史의 漢字文化一邊倒의 폐단을 거울삼아. 西洋文化의 攝取消化에 각별한 選擇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見地에서 「密陽地名攷」의 出版은 단순한 地方文化事業의 하나로 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상당한 意味를 賦與해도 좋다고 본다. 우리 密陽이 다른 地方에 앞서서 해 낸 일로서 앞으로 여러 고을의 呼應을 얻어, 뜻있는 運動이 펼쳐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1994년 8월
學術院會員 成均館大學校名譽敎授
文學博士 李 佑 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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